공포]신흥종교 上
신흥종교 上
내가 살고 있던 고향은 매우 시골이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논,밭과 산에 둘러쌓인 곳이었고, 오락이라곤 스쿠터로 1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시내에서 노래방에 가는 것 정도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시골에 1991년의 어느날, 마을에 모 신흥종교시설이 지어지게 되었다.
건설 예정 계획의 단계에서 주민들이 심하게 반발하여, 내 부모님도 데모에 참여하곤 했다.
우리 마을이 속한 시의 시장과 도지사 등 관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많은 손을 써 보았지만,
그 종교단체가 관청에 제시한 '어떤 조건' 떄문에 그 시설은 그대로 세워지게 되었다.
아마도 고령화되고 쇠퇴해버린 지방 관청에 기부금을 기여하는 것 같았다.
그 종교시설은 우리 마을의 한 구석에 세워졌는데, 그 크기가 야구장 서너개는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시골이라 땅값이 쌌을거라 생각된다.
고등학교 2학년의 가을 쯤에 그 시설은 완성이 되었고, 부모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그곳에 가까이 마라.", "그곳의 사람들과 아는척 하지 마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나는 친구들 8명 정도와 함께 그곳을 한번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주위가 높은 벽으로 둘러쌓여 있고, 정면에는 집채만한 거대한 문이 있으며
그 문의 양쪽 상단에 과장되게 무서운 얼굴을 한 반야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동급생들은 "대박이다! 사이비교다!! 악마교다!!" 라며 소란을 피웠고, 그렇게 학교에서는 그
종교를 '악마교' 또는 '반야단체'등의 이상한 별명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가끔 심심할땐 동급생들 몇명이서 호기심을 안고 심심풀이로 그 시설 주변을 자전거로 돌곤 했는데, 이상
하게도 그 종교의 신자나 관계자는 한명도 보지 못했다.
인기척이 전혀 없었던 만큼,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점점
옅어져 갔다.
우리가 3학년이 되곤 종교시설의 이야기나 소문들은 거의 입에 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할일없이 똑같은 날의 반복만이 계속되던 중, 동급생 A가 그곳에 담력시험하러 가자는
제의를 했다.
"야, 엄마한테 들었는데, 악마교 건물에 이쁜 여자가 들락거린데. 매일 우리 가게에 물건 사러
온다던데."
A의 집은 우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꽤 큰 수퍼마켓을 하고 있었다.
A의 말을 들으니, A의 부모님은 매일 2만엔~3만엔분의 수익을 올려주는 '악마교'에게 언젠가부터 고마워
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거기 사람은 조용조용하고 착한 사람밖에 없다더라. 솔직히 이제와서 무섭지도 않잖
아? 한번 가보자."
A의 말을 듣고,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겹고 '예쁜 여자'라는 단어가 내뿜는 유혹에 이기기 힘든 나이었던
우리는 입을 모아서 "가보자!!"며 나와 A, B, C, D, 다섯명과 후배 E와 F를 껴서 7명이서 가기로 했다.
"7명이나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겟어?"
우리는 그 시설에서 가까운 몇년전에 새 건물로 이사해 버린 빈 우체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땐, A와 B, C, E는 와 있었지만, D와 F가 30분을 기다려도 오질 않았기 때문에
5명이서 가게 되었다.
그 시설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전에 한번 봤던 그 거대한 문까지 걷기 시작했다.
"와... 밤이 되니까 역시 무섭네..."
"손전등 하나 더 가져올걸..."
등 하나둘씩 말을 꺼냈지만, 가로등 하나 없이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둠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엄청난 중압
감을 주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둠 저편에 높은 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일렁거리는 손전등 불빛에 깊게 새겨진 굴곡마다 생긴 그림자로 낮에 보았을때보다 훨씬 선이 굵어진 반야의 얼굴에 심장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C가 말했다.
"문이 이렇게 커서야 안에는 못 들어가겠는데?"
그러자 A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거 대문 옆에 작은 문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갈 수 있어."
A가 손으로 문을 밀자, 문은 녹슨 쇠가 문질러지는 듯한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우리는 한명씩 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조금씩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없는데?"
"건물 가까이는 가면 안되지 않냐?"
등등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쓸데없는 말을 했는데, 아마, 그 분위기와 우리가 처한 상황에 침묵까지 더해지는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어서라고 생각한다.
긴장된 나머지 무언가 말을 하지 않곤 못 배기는 그럴때가 있지 않는가.
우리의 손전등 빛이 닿는곳 까지는 자갈이 덮힌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평한 평지였고, 겁을먹어 긴장했던것보다 너무 시시한 나머지, 우리는 건물이 있는 곳까지 가 보기로 했다.
100미터쯤 걸었을까, 어둠속에서 커다란 건물 3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기묘한 디자인의 건물이었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건물 주변을 살금살금 걷고 있자, 멀리서 불빛이 보였고, 우리는 아무도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불빛에 끌리듯이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평범하게 생긴 공중화장실이었다.
이런곳에 왜 공중화장실이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 화장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에 있었고, 불빛 아래 보이는 화장실 건물은 매우 깨끗했으며, 주위는 흰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고 벤치까지 놓여 있었다.
"좀 쉬었다 갈까?"
A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냥 대충 봤으면 집에 가자. 응?"
"경찰이라도 부르면 어떻게 해!!"
다들 슬슬 집에 가고싶어하는 눈치였지만, A는 그런 우리의 말을 무시한 채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A를 바라보며 언성이 높아질 듯 했지만, 그런 우리 마음을 읽었는지 A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한대만 피우고 가자."
A의 말에 우리는 몇분만 있으면 다시 나갈 생각에 약간 안도했는지 둥글게 모여 서서, "막상 와 보니까 별것도 없다." "얼마나 멍청하면 저 큰 건물안엔 화장실도 안 만들어서 이런데다 화장실을 지어놨을까." 등 10대 후반이 생각해 낼만한 허세가 섞인 대사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A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싶다며 당연하다는 듯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런 A의 뒤통수에 대고 이런곳에서 똥싸면 저주에 걸릴 거라면서 조롱했다.
나도 A를 놀리는 무리들과 함께 피식 거리긴 했지만, 한밤중에 사이비 종교 시설에 몰래 들어와서 찾아낸
화장실에서 어떻게 볼일을 볼 생각을 하는지 A의 무신경함에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 안에서 A가 우리를 불렀다.
"야, 재밌는게 있다."
우리는 그 말에 화장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여기가 뭐 같냐?"
A는 아까와 같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화장실 안은 소변기가 늘어서 있고, 대변보는 칸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화장실이었다.
"뭐긴, 화장실이네.."
A는 말없이 문이 닫혀있는 가장 안쪽 칸을 가르켰다.
나는 그 칸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보았고, 그곳에는 변기 대신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 있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너비의 짙은 회색의 시멘트 계단이었다.
"이상하지않냐? 이 계단."
'화장실 구석에 숨겨진 지하 계단이 이상하지 않을리가 없잔아' 라고 생각은 했지만, 계단이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에 말문이 막혔다..
다들 나와 같은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계단의 끝은 지독한 어둠에 번져 있었다.
"우리 내려가 볼래?"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 화장실에 숨겨진 계단을 발견하기까지의 A의 행동들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갑작스레 이곳에 오자고 한것도, 대문 옆의 작은 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계단을 발견한 것도, 우연치고는 이야기가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아마 A는 예전에 이곳에 와 보곤 우리를 데리고 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내려가자는 A의 말에 B와 나는 고개를 저었고, A는 우리에게 남자 주제에 용기가 없다는둥 비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C와 E는 한번 가볼까 하고 나섰다.
어린 내 눈에도 그것은 A에게 지기싫은 유치한 객기로 밖에 안보였다.
그런 둘과 함께 A가 나와 B를 도발 해 왔다.
"니가 뭐라든 난 안가. 갈테면 너나가라."
B는 약간 짜증을 냈고, A는 그런 B를 경멸하는듯이 째려보곤 C와 E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뭐가 있는지 보고만 올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그럼."
계단을 내려가며 A는 우리에게 말했다.
A의 태도에 매우 짜증이 났지만, 가져온 손전등 두개 모두 A와 E가 가져가 버린 바람에 어둠을 뚫고 B와
둘이서 다시 그 작은 문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화장실은 건물 두동 사이에 있었고, 아까 본 바로는 건물에는 창문도 많아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화장실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야, A 뭔가 이상하지 않냐?"
그렇게 화장실 벽에 기대어 사용한 흔적이 없이 비 정상적으로 깨끗한 소변기에 촛점을 두고 멍하니 서있던 나에게 B가 물었다.
"응, 쟤 오늘 왜 저러냐? 처음부터 우리를 여기로 데려 올 생각이었던거 같지 않냐?"
나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B또한 A의 그런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끼리 이야기 한다고 어떻게 되는 일도 아니어서, 둘이서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놓다보니 5분정도 지난것 같았다.
"좀 늦네.."
이제 나와 B는 서로 이야기 하던 것도 멈추고 짜증을 삭히기에 바빴다.
조금더 시간이 지나자, B는 우리끼리라도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A가 손전등을 다 가져가 버린것과 우리가 들어온 문을 어둠속에서 못 찾을 것 같다고 설명하자, 곧 포기했다.
다시한번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을대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멀지만, 여러사람이 내고 있는 일정한 간격의 발소리.
아까 우리가 밟고 지나왔을때와 똑같은 자갈끼리 부딪히는 소리.
누가 뭐랄것도 없이 나와 B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야... 누가 온다... 어쩌지...?"
B가 나에게 속삭였고, 그 속삭임은 막연한 공포심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발소리는 먼곳에서부터 들려왔지만, 어느쪽에서 들리는 발소리인줄도 모르겠고, 지금 밖으로 도망친다고해도, 시설 밖까지 무사히 잘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벅저벅저벅저벅
"야... 이쪽으로 오는데...?"
B는 많이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고, 나 또한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저벅저벅저벅저벅
"그냥 지나가는 거일수도 있잖아... 정말 이쪽으로 오는거 같으면 그때 숨자..."
나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발소리는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
그때 나와 B는 거의 동시에 계단이 있는 칸이 아닌, 남은 두칸의 문 하나씩을 잡고 당겼다.
문은 잠겨있었다.
나와 B는 당연히 열릴줄 알았던 문이 잠겨있자, 어찌할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그때, 갑자기 발소리가 멎었다.
순간 나는 그들이 걸음을 멈추었나 하고 안도하려 했지만, 곧 그 환상은 깨졌다.
발소리가 멎은건 화장실이 주변의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있기 때문이란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확실히 이 화장실로 오고 있었다.
"하아...하아..."
나와 B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내려가자."
B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있어도 숨을곳이 없잖아."
B의 말이 맞았다.
시골마을 한구석에 있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 시설의 화장실 한구석에 숨겨진 정체모를 계단이 안내하
는 암흑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죽을만큼 싫었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마저도 발소리를 숨기지 못할만큼 그들이 가까워 지는걸 느끼며, 나와 B는 계단이 있는 칸의 문을 열고,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시멘트로 빚어져 있었고, 긴 계단이라고 생각했었지만, 10단 정도로 의외로 금방 바닥에 닿았다.
전구 불이 밝혀있던 화장실에서 바로 내려와서인지, 암흑은 우리에게 한치앞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B의 손목을 잡고 둘이서 벽을 더듬으며 좁다란 통로를 조금 걸었다.
몇발짝 걷지도 않았지만 통로 끝은 벽으로 막혀 있었다.
'막다른 길이네...'
라고 생각한 순간, B가 더듬던 벽을 만지며 속삭였다.
"야..이거... 문인거 같은데..."
나도 그쪽 벽에 손을 뻗어보니 철제 문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고, 곧이어 동그란 손잡이도 찾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더니 오렌지색 전구 빛이 둘러쌓인 꽤 넓은 방이 나왔다.
일반 가정집의 거실보다 조금 큰 정도의 방이었다고 기억한다.
나와 B는 일단 그 방에 들어갔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닫았다.
그 방은, 계단과 같이 벽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고 아무것도 없는 네모난 방이었다.
특이한건 방 한가운데에 커다랗고 두꺼운 철제 훌라후프처럼 생긴 큰 원형 조형물이 있었다.
그 원은 천장과 바닥, 양 옆의 벽에 꼭 맞게 닿는 형태로 세워져 있어서 방을 우리가 있는 문쪽과 안쪽으로 한가운데를 가르는 형태로 세워져 있었다..
나와 B는 문앞에서 바깥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거친 숨소리만 내쉬고 있었다.
그대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내려간 애들은?'
오렌지색으로 물든 B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고, 겁에 질린 눈을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할만한 상태도 아닌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바닥와 이 방의 천장은 생각보다 얇은지, 여러사람이 내는 발소리는 우리가 있는 방에 기분나쁜 울림을 전달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아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현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패닉 상태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을 붙들고 부들부들 떠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염불같은걸 외고 있는지, 발소리의 울림과 함께 내 청각을 괴롭히는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얇은 천장은 그 소리를 여과없이 내 귀에 전달해 주었다.
공기의 울림은 피부를 파고들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화장실 안에는 갈수록 사람이 많아 지는 듯 했다.
공포심 때문에 내 귀가 예민해 진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기분나쁘게 낮은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많아 지는것 같았다.
얼마나 그것이 계속되었을까, 목소리가 어느순간 뚝 그쳤다.
갑작스런 정적에 나와 B는 철문에 조심스레 귀를 갖다 대 보았다.
텅!!!! 끼익... 끼익...
텅!!!! 끼익... 끼익...
하지만 우리 머리 윗쪽에서 나는 걸로 보아 우리가 있는 계단이 있는 칸이 아닌 나머지 두 칸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중요한건 그것은 분명히 문을 세게 '여는 소리' 였지, '부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마도 잠겨있던 칸에는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화장실 칸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았던 것일까...
끼익...........................
잔뜩 귀기울이지 않으면 안들릴 정도의 소리였다.
마지막 남은 문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내려온 계단이 있는 칸의 문이 열렸다.
땀범벅이 된 내 온 몸을 소름이 휩쓸고 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마치 우리가 여기 있는것을 알고 우리에게 겁을주는 듯이 한칸한칸 천천히 내려오는 것 같았다.
한계였다.
'그들이 이 철문까지 올 시간은 몇초나 남았을까...'
'나와 B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땀이 젖은 손으로 B의 팔을 잡았다.
다섯 계단을 내려온 소리가 들렸을때 B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 앉아 버렸다.
그리곤 이상한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걸 내며 안간힘을 써서 방의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려 했다.
"어디가!!!!"
나도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B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내 손끝이 B의 옷자락에 닿으려 한 순간 B는 그 원형 조형물의 가운데를 지나 방 반대쪽으로 기어가 버렸다.
그리곤 그대로 사라졌다.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머리가 하는 생각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문과 원 사이에 서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채 그 커다란 원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등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막을 예리한 칼로 찢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든지 그들에게 빌 생각이었다.
싹싹빌면 죽이진 않겠지...
끌려가서 노예처럼 살더라도 살고싶다...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쪽을 돌아 보았을때 1초도 걸리지 않고 그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묘한 왕관 같은걸 뒤집어 쓴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문 틈으로 머리만 내 놓고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에 주름투성이의 얼굴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왕관을 썻을 뿐, 평범하고 연약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본능이 이것은 절대 사람이 아니라고 적신호를 보내왔다.
세포 하나하나가 '그것'을 부정했다.
그 무기질적인 웃는 얼굴이 인간은 낼 수 없는 악의를 내 뿜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형 조형물의 밑부분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