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오후 8시 작성된글 .. 다쓴 문화상품권 번호 #20 번째
하하.. 이젠 그냥 예약을로 하겠습니다.. 시간이없네요.. ㅋ
예약 이란걸 안쓰고있었는데.. 필요할때가있네요.. ㅎㅎ
암튼 잘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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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2-4430-3363217300
본문화상품권 번호는 직접 쓴 것을 배포하는것입니다.
이번에 댓글 다신 1분 에게도 선착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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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12시 반
은호는 멍하니 카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초조함에 사무쳐있었고, 손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은호는 시선을 문과 시계에 번갈아가며 돌리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만 했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다.
『끼익』
"안녕하.."
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자동적으로 인사를 하려던 은호의 눈이 한 여성의 가슴팍에 꽂혔다.
팬던트였다.
십자가가 있었다.
뱀도 있었다.
그리고 지연이 서 있었다.
"지연씨..."
은호는 멍하니 지연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러한 은호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지연은 음료가 있는 코너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녀석의 '퀸'이었다.
분명 은호는 그녀에게 그 어떤 상처도 줄 수 없었다.
완벽한 '체크 메이트'였다.
"미안해요."
저멀리 음료 코너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은호의 눈이, 손이, 다리가, 심장이 떨려온다.
"미안해요 정말.."
은호가 결심한 듯이 자신의 두 손을 꼭 쥔 채,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지연씨!! 지연씨도 천국에 가고싶은 겁니까?"
음료코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나도 가고싶어요 천국! 하지만! 하지만요! 지연씨가 원하는 그 천국이란게..
아니, 그 천국을 보내준다는 누군가가! 정말 지연씨를 천국으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음료코너에서는 음료수를 고르는 듯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왜!! 도대체 왜!!! 왜 하필 당신입니까1!! 왜 하필 지연씨냐구요!!"
음료코너에서의 달그락거림이 멈췄다.
"은호씨는...천국에 가고싶지 않으신가요..?"
순간 은호의 귀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입이 실룩거렸다.
분명 자신은 천국에 가고싶어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남들과는 다른 세상이었기에.
9살 때 처음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부모님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자퇴하고 강간과 강도로 삶을 꾸려왔다.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쓰레기라고 불렀다.
단지 그 뿐이었다.
9살 때 자신이 죽인 그 사람이
자신을 유괴하려고 하던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부모님을 죽였을 때,
계부와 계모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려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맨 처음 강간과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동료들의 행동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는지 묻지 않았다.
쓰레기라고 불렀다.
단지 그 뿐이었다.
은호가 무슨 행동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심지어 어떤 생각을 하건,
쓰레기일 뿐이었다.
세상에게 그는 그저 폐기처분 되어져야 할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쓰레기가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은호역시 자신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게 그는 그저
9살 때 사람을 죽인 악마.
부모님을 죽인 패륜아.
수 십차례 강간 절도를 일삼는 인간 말종.
은호는 그러한 세상 속에서 남들과는 같이 살수 없다고 스스로를 구속시켰다.
그래서 그는 천국에 가고 싶었다.
그 곳에서는 자신이 쓰레기가 아닐 테니까.
그 곳에서는 자신도 남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 곳에서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자신에게 부모님이 있다면,
자신을 팔아넘기려던 계부와 계모가 아닌
정말 자신을 사랑해줄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 곳은 분명 천국이라는 곳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은호는 천국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의 앞에서 천국에 가고싶냐고 묻는다.
"당신은...천국에 가고싶지 않나요..?"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는 그녀를 향해, 녀석을 향해 말했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음료코너에서 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이제야 사랑이란 걸 배웠습니다.이제야 나도 세상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모든 행복을 집어치우고 떠나아하는 천국행 기차표라면.."
음료코너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그런 표따위 찢어서 버리겠습니다."
은호의 눈에서 조그마한 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지연씨가 없는 천국보단..지연씨와 함께할 수 있는..이 곳이 좋습니다."
음료코너의 달그락거림이 멈추었다.
"멍청하네요..이은호란 남자는.."
『또각..또각..』
은호를 향해 지연이 걸어왔다.
지연의 눈가는 호수처럼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었다.
"지연씨...다시한번 생각할 수 없습니까? 꼭 천국을 ...."
『탁』
지연은 자신이 들고온 음료수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계산해주세요."
은호는 멍하니 지연이 가져온 음료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은호의 옆에 놓아 둔 후에
음료수를 가지고 가지 않은 채로 몸을 돌렸다.
"내 대답은 이걸로 다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고마워요 은호씨..그리고 미안해요.."
지연은 조용히 편의점을 나섰다.
바깥바람에 휘날리는 지연의 머리칼이 유난히도 슬퍼 보였다.
은호는 그녀가 남겨둔 음료수와 돈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코카콜라가 아닌 게토레이가 놓여져 있었고,
400원이 아닌 1200원이 놓여있었다.
은호의 눈에서 흐르던 물방울은 폭포가 되어 1200원을 적시고 있었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은호의 머릿속은 햐얗게 물들어있었고, 그저 하나의 생각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콜라가 아닌 게토레이....그녀는 녀석의 '퀸'이길 거부했다.
400원이 아닌 1200원...그녀는 녀석의 '퀸'이 아니었지만....나의 '퀸'도 아니었다..'
은호는 1200원에 포함되어있던 지폐를 손으로 꽈악 쥐어 구겨버렸다.
"왜...도대체 왜...왜 난 아닌겁니까...왜 나의 '퀸'이 되어주지 않는 겁니까..."
지연을 곁에 둘 수 없다는 사실은 은호에게 커다란 장애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이상 녀석과 그녀의 관계를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그녀가 놓아둔 게토레이를 바라보며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시간이 흘렀다.
은호는 여전히 멍해 있었다.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어렴풋한 느낌은 남아있었지만,
지연이 자신을 떠나간 것 때문이라는 생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세시간이 흘렀다.
은호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지 않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분명 지연이 자신을 뒤로한 채 떠났다.' 라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절대 '평소와 같지 않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를 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은호의 눈가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네시간이 흘렀다.
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폐를 쥐고있던 손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넘어서서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이 오지 않았다.'
은호의 눈은 무지막지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아는 바에 따르면, 검은 옷의 사내들과 녀석은 분명 주종관계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옷의 사내들은 '지연이 콜라를 사간 후에' 들어와서 콜라를 사들고 나갔다.
즉, '콜라'라는 것은 녀석과 녀석의 종들 간의 무언의 합의.
그러나 오늘 지연은 콜라를 사가지 않았다.
검은 옷의 사내들도 콜라를 사러 오지 않았다.
만약....검은 옷의 사내들이....편의점 앞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녀가 위험하다!'
은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편의점 밖으로 뛰어갔다.
분명 지금 그녀는 위험하다.
물론 그녀는 똑똑한 여자였기에 무턱대고 죽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는 충분히 살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가 위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은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은호의 동공은 아까보다 더한 떨림으로 요동쳐왔다.
은호는 생각했다.
'왜..그녀는 굳이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내 앞에서 '게토레이'를 내밀었는가..?'
은호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왜..그녀는 나에게 '게토레이'를 줌으로써 초래되는 위험을 피하려 하지 않았는가..?'
은호의 무릎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었다.
'왜..그녀는 나의 '퀸'이 되지 않았는가..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게토레이'를 넘겨 주었는가..?'
은호의 눈에서 달빛을 머금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나를 위해...나를 위해...'퀸'이길 포기했다..'
체스에서 퀸이 가지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녀석과 나는 체스의 한 복판에 서있다.
녀석은 나의 체스 말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의 체스 말은 커녕, 전략조차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퀸'의 희생은 나에게 너무나도 막대한 피해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녀는...
나를 위해...
'퀸'이길 포기했다.
자신이 '퀸'이 되어서 녀석에게 잡히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인지 알고 있기에...
대신 그녀는 '폰'이 되었다.
나를 위해 '폰'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여...
은호의 눈 앞에 '킹'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생각이다..
"살릴수는...없는건가..."
은호는 조용히 뇌까렸다. 그의 눈물이 입과 코로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그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은호를 위해 '폰'이 되었다면, 은호는그녀가 남긴 행보를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손에 넣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은호의 다리는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은호는 자신이 그녀를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안 듯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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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은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집이 지연의 집이 분명했다.
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 주위 대기를 둘러싸고 있는 짙은 혈향..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더이상 이 곳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가 은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단 사실을..
은호의 떨리는 손이 현관의 손잡이를 조용히 돌리기 시작했다.
피어오르는 혈향.
짭짜름한 피냄새..
그리고 두려워했을 그녀의 눈물..
그 모든 것들이 은호의 가슴을 거세게 후벼파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체만이, 그녀의 검붉은 피만이 거실을 수놓고 있었다.
"아..아아..."
은호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당기며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나갔다.
한걸음 한걸음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은호의 가슴은 수만갈래의 칼부림을 받은 듯 아파왔다.
그녀와의 추억.
그녀와의 모든 기억들이 둑이 터진 댐 마냥 거세게 차올랐다.
은호가 그녀에게 완전히 다가섰을 때,
은호와 그녀 사이에 아무 장벽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바로 지금..
은호는 지연에게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온기 하나마저도 그녀에게 불어넣을 듯이 따듯하게,
그러나 자신의 격정적인 마음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듯 부드럽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잘가요..."
은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었다.
슬퍼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녀석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자신에게 다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전에..
녀석이 돌아오기 전에 그녀가 남겨둔 '체크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은호의 머리와 눈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은호의 레이더에 지연의 손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은 앙다문 처녀의 입술처럼 꼭 쥐어져있었는데, 그 안의 무언가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은호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펴보았다.
그 곳에는 팬던트가 들려져 있었다.
은호의 머릿속에는 당혹감이 어려오기 시작했다.
'지연씨..팬던트가 녀석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알고 있었어요..당신은..그렇다면 당신은 왜...'
은호는 확실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는 죽임을 당한 것일까..
비록 은호가 활용하진 못했지만, 팬던트가 녀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아채고 있던 것이었다.
은호의 머릿속은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알고있었다..하지만 활용하진 못했다..활용하진...활용...?'
은호의 눈이 커졌다.
분명 은호는 팬던트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진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은호가 팬던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그의 손에 팬던트를 쥐어주었다.
"잠입..이다.."
은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은호보다 똑똑했다.
어쩌면 '폰'이 되어 길을 열어야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은호 자신이 되어야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희생되어버린 지금,
은호에게 남은건 그녀의 희생을 발판삼아 녀석에 면상에 칼을 꽂아 넣는 것.
은호는 그녀의 주위를 다시한번 둘러보았다.
그녀라면..
그녀라면..
그녀라면 잠입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을 눈치 채고, 그것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은호는 그녀의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녀의 주위에는 피가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그 피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니,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었다.
은호는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막으며 그 피를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녀의 집에 놓여있던 냉장고가 위치하고 있었다.
은호는 냉장고의 문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옥 불에 떨어져야 하는 악마는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
사탄과 그의 12사도를 영접하라! -사도 진리회- 』
그 곳에 붙어 있는 작은 전단지...
"사도진리회...팬던트...그리고...콜라...아..지연씨 당신은..."
은호의 입에서 슬픔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그녀는 이것을 위해..처음부터 이것을 위해..
은호에게 '코카콜라'에 담긴 의미를 말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검은 옷의 사내들 앞에서 은호에게 콜라가 아닌 게토레이를 주었던 것이다.
은호가 녀석에게 한걸음 다가갈 활로를 마련해주기 위해,
오로지 잠입을 위한 포석을 놓아주기 위해,
그녀는 '폰'이 되었던 것이다.
은호는 조용히 누워있는 지연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지연의 시체를 다소곳이 눕혀 주었다.
"당신은 떠날 때도 아름다워야해요."
은호는 마지막 입맞춤을 그녀에게 선사한 후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요."
은호는 조용히 문을 나섰다.
그의 눈빛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다리는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았다.
어둡기만 했던 하늘이 별 하나로인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호는 다시한번 뒤를 돌아본 후, 그녀의 집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체크메이트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은호의 발걸음이 그 어느때보다도 당차 보였다.
싸늘한 한기가 대기를 뒤덮고 있는 저녁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러나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된 은호는 어김없이 편의점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기대감으로 편의점의 문을 바라보는 은호는 없었다.
그저 복수에 대한 일념과 녀석을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한없지 편의점의 문을 쏘아보는 은호만이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올 때가 되었구나.."
시계는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하지만 그녀와 함께 코카콜라를 사들고 나가던 검은 옷의 사내들은 분명 오늘도 찾아올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은호는 당황했다.
그 무리는 모두 검은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안..안녕하세요."
검은 옷의 무리들은 콜라가 들어있는 음료 코너로 몰려가더니 이내 한사람당 하나씩 콜라를 들고
은호앞에서 멀뚱히 서있었다.
"계산을 도와드릴까요?"
그들은 말없이 은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은호는 쭈뼛거리며 40개의 콜라를 계산해주었다.
마지막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편의점 밖으로 사라졌다.
은호는 벙쪄있는 상태로 편의점의 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어째서 오늘은..?'
문득 정신이 든 은호.
허둥지둥 음료코너에서 콜라를 빼들고는 밖으로 내달음친다.
물론 집에서 가져온 검은 코트와 그 안에 잠자고있는 시린 칼날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선 은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이동하려면 분명 시간이 걸리리라.
아니나다를까, 근처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 했다.
은호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다리를 바삐 놀렸다.
뛰어가는 와중에도 지연이 건네준 팬던트를 목에 거는 것을 잊지 않는 은호였다.
은호는 팬던트에 남아있는 지연의 온기를 느끼기라도 하듯 연신 팬던트를 쥔 채로 그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그는 과거 자신이 검은 옷의 사내를 미행했던 골목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인원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쩌면 두번 다시는 이 골목의 흙을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은호였다.
그러한 은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은 옷의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무어라고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은호는 저번처럼 그들의 대화를 먼발치에서 엿듣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걸음을 성큼성큼 내걸으며 그들 사이로 걸어갔다.
"여~ 오늘은 사람들이 왜이렇게 많은거야?"
"신입인가?"
"까칠하기는~! 들어온지 며칠 안되었수다. 근데 저번보다 사람들이 많아진 듯 한데?"
"아무래도 그렇겠지. 오늘이 '그 날'이니까."
"그 날..?"
"허허 이사람..신참 티 팍팍 내는구만. 우리가 여기 왜 모였는지 잊은겐가?"
"무..물론 그렇지는 않지. 아..아하하.."
은호는 적잖이 당황했다.
잠입이라고 해봐야 그녀에게 얻은 힌트를 토대로 무작정 들어오기만 했지, 실상 그들에 대한 정보에 대해선
무지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걸리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은호를 뒤로한 채 갑자기 그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은호 역시 영문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발끝만 멍하니 바라보던 은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자네들...천국에 가고싶은가..?"
『너..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심장이 달음박질을 친 것마냥 두근두근 떨려왔다.
이 목소리다.
녀석의 목소리다.
며칠간 그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난생 처름 경외감을 심어준 그 목소리다.
자신의 사냥감을 빼앗아가고
지연의 목숨을 앗아간 그 목소리다.
은호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당장에라도 달려나가 녀석의 면상에 칼을 꽂아넣고 싶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오늘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그 날'이다."
"와아아아!!!!"
은호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정보를 얻기 위함도 있었지만 빈틈을 보이는 즉시 녀석에게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다. 일단 자리를 이동하자."
녀석은 검은 옷의 군중들을 향해 손짓을 한 후에 자신의 뒷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잘 훈련된 군대를 보는 듯한 장관이 연출된 것은 녀석이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였다.
검은 옷의 무리들은 녀석의 걸음에 맞춰 일제히 앞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저벅저벅하는 소리는 마치 하늘을 뒤흔드는 듯 했다.
그러한 기세에 은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앞으로 떠밀려나가고 있었다.
"제..제기랄. 일이 꼬여가는데.."
왠지모를 불길함이 엄습하는 은호였다.
그러한 은호의 생각을 뒤로한 채, 검은 옷의 무리들과 녀석은 뒤 쪽 공터에 자리잡고있는
폐허가 된 공장부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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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했을 땐, 사람들에 떠밀려 폐허가 된 공장의 안으로 들어온 이후였다.
은호를 비롯한 검은 옷의 무리들은 맨 앞 강당에 올라가 있는 녀석을 중심으로 넓은 군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경배하라."
녀석의 한마디에 수 백의 무리들이 한 순간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행동에 은호는 당황했으나 가만히 있다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충이라도 그들을 따라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녀석은 자신을 향해 절을 하는 무리들을 한번에 쓰윽 훑어보는 듯 했다.
"천국에 가고싶은가."
"네!"
"천국에 가기위한 행동은 모두 마쳤는가."
"네!"
그들은 일제히 검은 옷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은호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는 시늉을 하며 그들의 동태를 주시하였다.
그들은 주머니에서 콜라를 꺼내보였다.
"당신께 바치는 피의 성물입니다!"
"다음."
그들은 콜라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은 후에 또다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은호 역시 미리 챙겨온 콜라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은 후에 그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은호의 눈에 비친 것은 붉은 피를 뚝뚝 흘리는 사람의 몸조각이었다.
은호는 경악했다.
수 백의 사람들이 꺼내놓은 것들은 가히 끔찍한 것들이었다.
몇몇은 사람의 내장을 콜라 옆에 내려놓았고, 몇몇은 사람의 손을, 몇몇은 사람의 눈으로 추정되는 덩어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수 백의 사람들이 꺼내놓은 고깃덩어리들은 이내 주위에 피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찔한 피냄새에 은호는 머리가 혼미해짐을 느꼈다.
'이자식들은 미친놈들이다...분명해...'
그러한 은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은 옷의 무리들은 주머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들을
내려놓기 바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은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먹어라."
녀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자신들이 꺼내놓은 고깃덩어리를 입에 우걱우걱 쳐넣기 시작했다.
비위가 약한 듯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토악질을 해댔지만, 이내 주위의 눈총에 못이겨 자신들이 토한
고깃덩어리를 입에 주워넣기 바빴다.
그들은 중간중간 목이 메이는지 콜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콜라가..이런 의미였나...'
은호의 머리에 지연이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채로 콜라를 들이키는 장면이 스쳐지나갔지만 애써 지우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피냄새는 이미 공장을 가득 채우고 세상을 덮어버릴 듯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입에 인간의 살덩이였던 무언가를 쳐넣으며 콜라를 그 위에 들이붓고 있었다.
은호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먹는 척 하면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인육을 만찬으로 하는 광란의 파티는 몇 십분이 지나서야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의 눈은 사람의 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광기에 차 있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치광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던 은호마저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기였다.
군중심리와 인육을 먹는 행위가 결합된 광기의 극치였다.
몇몇의 사람들은 반대로 눈물을 흘리며 겁에 질린 토끼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은호는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때였다.
"아직도 속세의 미련과 번뇌를 이기지못한 마군들이 보이는구나."
녀석의 말에 광기를 머금은 군중들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토끼의 눈을 한 몇몇의 사람들은 더욱더 겁이 질린 채 몸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광기에 찌든 무리는 사자가 토끼를 사냥하듯, 겁에 질린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발로 찬다느니, 주먹으로 치고받는다느니하는 어설픈 몸싸움이 아니었다.
'사냥'이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광기에 찌들어버린 무리에의해 갈기갈기 찢겨져나갔다.
피는 온 세상을 물들일 듯 퍼져나갔고, 향기 또한 더욱 짙었다.
폐허가 된 공장의 벽 틈새 사이사이로 비쳐오는 달빛을 받은 그들의 모습은 악마의 형상이나 다름없었다.
개중에는 엄마를 부르짖으며 다 뜯어져나간 다리를 붙들고 기어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고
자포자기한 듯 자신의 너덜대는 팔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고통에 미쳤는지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고, 베어 물고, 찢으며 히히덕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만."
녀석의 말에 광기 어린 행동들이 일순간 정지되었다.
"이제 때가 왔다."
녀석의 말에 검은 옷, 아니 이제는 벌겋게 물들어버린 집단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자. 이제 내가 너희를 천국으로 보내주겠다."
녀석이 손을 하늘 위로 치켜올렸다.
은호는 녀석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녀석의 손이 하늘에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땅을 향해 뚝 떨어졌다.
"죽어라."
그 한마디에 수 백의 군중들은 자신의 손톱으로 자신들의 목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은 스스로의 손톱으로 경동맥을 끊어내고 쏟아지는 피와함께 무너져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마치 전화를 받은 뒤 가족들을 죽이고 자살한 가장의 표정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목에서 뿜어져나온 피는 서로의 얼굴을 적시고, 옷을 적시고, 바닥을 적시고, 하늘을 적셨다.
황폐한 공장에 남은 것은 수 백구의 굴러다니는 시체와
녀석과
은호였다.
"이제야 둘만 남게 되었군."
녀석이 은호를 향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나."
"물론이지."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겠네."
"알고말고."
"그렇다면 빨리 끝나겠군."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 가슴팍에 손을 넣었다.
달빛을 받은 시퍼런 날이 손에 닿았다.
은호는 그 것을 꺼내들었다. 은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녀석은 그러한 은호의 행동을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은호는 칼을 손에 쥔 채 녀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거리는 10미터.
은호는 떨고 있었다. 녀석은 은호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거리는 8미터.
은호의 심장은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녀석을 은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의 거리는 5미터.
은호의 얼굴은 피와 땀이 서로를 애무하며 흐르고 있었다.
녀석은 은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의 거리는 3미터.
은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반대로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녀석은 은호를 바라보며 짓던 웃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거리는 1미터.
은호가 손을 치켜들었다.
녀석은 은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천국에 가고싶나?"
그들의 거리는 30센티.
은호는 손을 뻗지 못했다.
녀석은 자신의 코 앞에 내밀어져있는 칼을 손으로 밀면서 다시한번 말했다.
"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눈이 떨려왔다.
"내 이야기좀 들어보겠나?"
녀석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은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녀석이 칼 끝을 밀고 있기 때문에?
아니.
은호의 가슴 속에서 갈망하는 천국에 대한 의지 때문에.
그러한 은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녀석은 다시한번 미소지었다.
그가 물었다.
"천국에 가고싶나?"
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녀석을 찌르지 못한 은호의 칼과, 녀석을 바라보고만 있는 은호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한번 묻지. 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목청이 무엇을 외치려는 듯 떨려오고 있었다. 그러한 은호를 녀석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좋아. 결단하기 어렵다면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게 어떤가?"
은호는 슬그머니 칼을 내려놓았다. 그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다.
"큭큭..그래야지..그래야 이 사도 진리회의 차기 교주감이지.."
"뭐라고...?"
"아아, 신경쓸 것 없어. 그냥 혼잣말이니까. 보자..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어떻게 죽인거냐."
"뭐라고?"
"어떻게 전화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거냐고."
"푸하핫! 그게 부러웠던 거군!! 응?!!! 좋아! 이야기해주지 나의 예술을.
뭐 대충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내가 그들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지.
그들이 '죽고 싶도록' 만들면 되는거야. 아아~ 물론 그렇다고 내가 믿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궤변따위를
늘어놓는게 아니야. 난 그런 소피스트적 기질을 가진 사람은 못되니까."
"가족을 죽이고 자살을 하게 만드는 건 전혀 쉬워보이지 않는데."
"그것도 매우 쉽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항상 '내 가족이 먼저야~ 내 가족 욕은 하지마~'
라고 징징대는 녀석들 치고 실속이 있는 사람은 없거든, 큭큭. 불행하게도 저런 사람들이 모든 인간의
대부분이지. 자 이렇게 예를 한번 들어보자. 만약 누군가가 너에게 가족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오면
1000년 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면 넌 어떻게 할까?"
"...."
"버리는거야!!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해!! 가족과 함께? 웃기고 있네! 그건 의지할 곳이 없는
박약아들이 버팀목을 마련하기위해 징징대는 변명에 불과한 거라고!
난 그들에게 저런 제안을 건넨거고 십중팔구 걸려들더군! 하나같이 웃으면서! 자기 가족을 난도질하면서!"
"그 제안이라는 게 뭐지?"
"큭큭...이제야 본론으로 들어오시는 구만. 잘 듣는게 좋을거야."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까까지 자신이 서 있던 교단을 향해 걸어갔다.
은호는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걸음걸이는 강단과 확신에 들어차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믿지 못하는 어불성설을 늘어놓는 사기꾼의 그것과는 확실하게 구별되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만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자신의 교단에 도착한 녀석은 은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만연에는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그가 은호에게 말을 건넸다.
"사탄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나?"
"물론."
"어떤 존재지?"
"악마의 대표."
"큭큭..니가 생각하는 악마란 건 뭐지?"
"악한일을 종용하고 선한 일을 하지못하게 하는 나쁜 존재..?"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부분이 그렇게 알지 않나?"
"왜 그렇게 알게 되었을까?"
"그야..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
"기독교는 누구의 종교지?"
"그야 하느님과 예수.."
"그들은 무엇을 읽고 그들의 교리를 탐구하는가?"
"성경.."
"그것은 누가 쓴거지?"
"예수를 믿는 그의 제자들이.."
"큭큭...웃기지 않은가? 예수에 의한 종교에, 예수에 의한 교리, 오로지 예수와 하느님만을 위한 그들만의
이데아 속에서 정립된 악마라는 허상이 왜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을까?"
"...?"
"잘 생각해봐. 인터넷에서, 아니면 우리 주위에서! 사람들이 죄없는 무고한 사람을 처단할 때 우리는
뭐라고 그들을 비판하지?"
"마녀 사냥..?"
"그래!!너희들은 그렇게 마녀사냥을 비판하면서 왜 자신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마녀사냥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왜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교리에 갇혀서 남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건가!"
"그야...천국에 가고 싶으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천국!! 웃기지 않나? 그들이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예수란 작자가! 그리고
하느님이란 작자가!! 원수를 사랑하라던!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주라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던! 그 사랑과 관용과 포용의 메시아인 그들이!! 과연 오로지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만
천국에 보내준다는 소리를 지껄였을까?!"
"..."
"난 그렇게 지껄였다고 생각한다."
"..? 무슨 소리지..?"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과 관용과 포용따위는 뭔지 모르거든. 그들은 위대하다. 전지 전능하다.
그렇기에 오만하지."
"...?"
"사랑? 천국? 모든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줘? 개소리 지껄이지말라고 해. 그들이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한 이유는 단 하나뿐.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더러운 오만! 내가 너희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싶어하는 역겨운 아집!"
"하지만..내가 아는 예수와 하느님은.."
"니가 아는? 그래 넌 뭘 아는데? 어디서 봤는데?"
"성경.."
"닥쳐! 성경? 그건 예수 나부랭이들이 쓴 소설에 불과하다고! 오오..아니지,아니지. 그래.
그러면 한번 물어보자. 성경에서 니가 말하는 사탄이라고 하는 악마가, 혹은 그의 하수인들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가?"
"..."
"그렇다면 하느님과 예수,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사람들을 죽인 적이 있는가?"
"...?!"
"그래...하느님과 예수, 그리고 그를 따르는 종자들은 성경에서 무려 9800명에 이르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
그에 반해 사탄이라고 칭해지는 자들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방관자'였기 때문이지. 그들이 유혹한다고? 악마의 속삭임? 나쁜 짓을 하도록 종용해?
웃기지 말라지!! 그들은 그저 우리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방관이라니.."
"예를 하나 들어보자. 꼬마 아이 두명이 있어. 녀석들은 잠자리의 날개를 뜯으며 하하호호 웃고있지.
옆에 두명의 어른이 있어. 한명은 그들을 꾸짖고 때리지만 다른 한명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자, 만약 잠자리가 죽었다고 해보자. 그건 누구의 탓일까?"
"당연히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어르..."
"그래~바로 그거야. 바로 그런 바보같은 생각 때문에 사탄과 악마들이 '나쁜 존재'가 되어버린거지.
그들은 그저 방관자일 뿐이었어. 다시 말하자면 오만과 아집없이 그저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였을
뿐이지."
"...."
"그들은 예수의 말을 믿었기에 성경에 그들의 살인행각을 모두 적었다. 그게 화근인거지.
자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본론이라면.."
"천국에 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그야 착한일.."
"니가 말하는 착한 일이 뭐지?"
"남을 잘 도와주고.."
"푸하핫! 지금까지 뭘 들은거냐. 잘 생각해봐. 아집과 더러운 오만으로 가득찬 그들이 만든 천국이야.
뭘 기대하나?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봐."
"...."
"멍청하긴...그들이 왜 그토록 사탄과 악마를 비방하고 나쁜 존재로 만들려고 했을까? 그들이 보기에
가장 멍청하고 치졸하고 더러운 짓이 뭐였기에?! 그들이 뭘했기에!"
"방관..?"
"그래! 천국에 가기위해선 별거 없어! 방관하지 않으면 되는거야!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방관하지만 않으면 되는거지!!!"
"그게 무슨 소리지..?"
"타일러서는 안돼.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한 존재거든. 교육이나 사회에서 그것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웃기지마. 사회가 발전할수록,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게 범죄고 살인이고 특수범죄다!
인간은 더럽고 악하기에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아는게 많아지면 그것을 뽐내고 싶어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하지. 그렇기에 더더욱 악해지게 된다."
"설마.."
"그래. 우리가 그들을 방관하지 않으려면."
녀석은 은호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은호는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광기에 찌들어버린 악마의 눈이었다.
녀석이 은호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들을 죽이는거야. 영원한 오만의 고리에서 해방시켜주는거지."
은호의 귓 속에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얼마간의 웃음소리가 그치자 은호는 녀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운채로 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은호의 입에서 대답을 원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설득한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 물론 지금처럼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 사람들은 대부분 논리의 허상에 빠져있기 마련이거든.
아무리 거짓말같은 이야기라고해도 논리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믿기 마련이잖아?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때는 좀 더 많은 종류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만 난 지금 널 딱히 죽이려고 한다기보단
널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해준 것 뿐이니 이쯤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소리지?"
"조금 있으면 알게 될거야, 큭큭."
녀석은 소름끼치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은호에게 다가왔다.
은호의 손에는 아직까지 달빛을 머금은 시퍼런 칼이 쥐어져있었지만 녀석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은호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은호의 칼날이 녀석의 배를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자, 어디한번 찔러봐."
"무슨 개수작이냐."
"죽여보란거야. 니 앞에 있잖아. 널 농락한 '살인기계'가. 죽이고싶어하지 않았나?"
"미쳤군. 그렇게 죽고싶냐."
"넌 날 죽이지 못할껄?"
"글쎄."
은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칼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은호의 칼날은 녀석의 배를 모두 들쑤셔 놓을듯 조금씩 배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이내 붉은 색 핏방울이 눈물처럼 한두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은호는 이래도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라는 식의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았지만
녀석의 눈빛은 흔들리고있기는 커녕 오히려 은호를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은호의 손은 떨려오고 있었다.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순간이었다.
자신을 농락하고
자신의 살인을 모욕하고
자신의 사랑을 기만하고
자신의 인생을 괄시했던,
역겹고, 더럽고, 치졸하고, 오만에 가득찬,
그러나
존경스러웠던
아니, 존경 자체를 넘어선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 앞에 찾아왔다.
은호는 칼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피는 한두방울 흐르다 못해 빗줄기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렸지만
녀석은 미동도하지 않았다.
은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은호가 두 눈을 깜박였다.
은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칼을 쥐지 않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씨발.."
은호의 손이 서서히 내려갔다.
그의 칼은 아직도 녀석의 배에 꽂힌 채로 영롱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큭큭...왜 죽이지 못하지?"
녀석은 자신의 배에 꽂힌 칼을 슬그머니 뽑아내고, 칼에서 흘러내린 자신의 피를 혀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런건 내가 원하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고.."
은호가 조용히 뇌까렸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녀석의 발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큭큭...너의 패배다..이건가?"
"...."
"큭큭...너에게도 '살인'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은 아니었나보군 그래?"
"...."
"그토록 사람을 죽여와놓고, 이제와서 나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자인 척을 하니 기분이 좀 어땠나?"
"..."
"큭큭..우습군 그래? 지금까지 정의의 사도인 척을 하면서 나를 쫒아다녔는데 이제보니 너나 나나
같은 살인마인 것을 느꼈나? 그래서 본연의 살인마로 돌아와 나를 죽이려고 보니까 모두 내가 짜놓은
각본이라는 것을 느꼈나?"
은호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로 녀석의 발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그런 은호를 아랑곳하지않고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지독한 패배감을 느꼈나?"
은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큭큭..천국에 가고싶나?"
은호의 눈이 살짝 떨려왔다. 은호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를 비웃으며 내려다보고있었다.
"...갈 수..있나..?"
은호가 초점없는 눈을 녀석에게 고정시킨 채로 물었다.
"크하하핫!!!살인마 주제에 같은 살인마보고 천국에 보내줄 수 있다고 하다니!!크하핫!!!
물론 보내줄 수 있지! 방법은 이미 모두 말하지 않았나?"
"그렇게만 하면...정말...나도..."
"갈수있지!크하핫!! 천국에 가고싶나?"
"천국에..천국에..."
『은호씨는...천국에 가고싶지 않으신가요..?』
메아리.
그리운 목소리.
그토록 찾아헤매이던 그림자.
은호의 모든 행동이 순간 멎어버렸다.
녀석은 은호의 귀에대고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은호의 귓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은호의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작은 메아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은호씨는...천국에 가고싶지 않으신가요..?』
『가고 싶지 않습니다.이제야 사랑이란 걸 배웠습니다.
이제야 나도 세상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모든 행복을 집어치우고 떠나아하는 천국행 기차표라면..
그런 표따위 찢어서 버리겠습니다.』
『멍청하네요..이은호란 남자는..』
은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던 그녀의 목소리는
은호의 눈을 적시고 흘러내려가
그의 목을 타고
그의 심장을 적시고
그의 마음을 움직인 듯 보였다.
흔들리던 은호의 눈이
흔들리던 은호의 마음이
흔들리던 은호의 손이
흔들리던 은호의 그 모든 것이
일순간 멈춰버렸다.
더이상 그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남아있지 않았다.
녀석은 그러한 은호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마침내 녀석이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은호에게로 녀석이 다가갔다.
녀석은 자신의 피를 머금은 칼을 은호에게로 내밀었다.
"자!!어서 이 칼을 받아들고!! 너의 가족들에게 가는거..."
별안간 은호가 벌떡 일어나더니 녀석의 팔을 쳐냈다.
녀석의 표정은 은호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가지 않아. 천국."
"뭐,뭐라고?"
"그래. 분명 아까전까지만 해도 난 너에게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지. 살인 기술도, 심리전도."
은호는 녀석에게로 한발자국 나아갔다.
"방금전까지만해도 난 너의 시나리오속에서 춤추는 삐에로에 불과할 뿐이었거든."
은호는 녀석에게로 한발자국 나아갔다.
"패배감이었다. 지독한 패배감."
은호는 녀석에게로 한발자국 나아갔다.
녀석과 은호와의 거리는 불과 30센티 남짓.
"내가 고작 이따위 사탕발림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나?"
"...큭.."
"자 어때? 이건 너의 시나리오 속에 들어가 있나?"
은호는 자신의 주먹을 냅다 녀석에게 휘둘렀다.
그바람에 녀석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청소되지 않은 공사장의 먼지들이 녀석의 주위에서 흩날렸다.
"천국? 좋지."
은호는 나가떨어진 녀석을 향해 다시한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녀석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너같은 쓰레기 같은 새끼가 나같은 쓰레기 새끼를 보내주는 그딴 천국이라면,"
은호는 녀석이 떨어뜨린 자신의 칼을 집어들었다.
칼에 묻은 피는 흩날리는 시멘트가루에 의해 덕지덕지 뭉쳐있었다.
은호는 자신의 손으로 피를 떨궈냈다.
"차라리 이 개같은 세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은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녀석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 어때? 지금 이 상황도 너의 시나리오 속에 들어가 있나?"
은호는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녀석은 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녀석 간의 거리는 1미터.
녀석의 무표정한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와 녀석 간의 거리는 40센티.
녀석이 자신의 몸을 슬그머니 일으키고 있었다.
그와 녀석간의 거리는 20센티.
은호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달빛을 받은 칼날이 눈부시게 시리다.
그와 녀석간의 거리는 10센티.
은호가 올라간 칼을 힘주어 내리꽂았다.
은호의 칼은 녀석의 어깨에 박혔다.
그와 녀석간의 거리는 無.
어깨에 칼이 박힌 채로 은호를 바라보는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찢어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녀석이 은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예상대로다 임마."
은호의 눈이 흔들렸다.
녀석은 틈을 놓치지 않고 은호를 밀치고 칼을 빼들었다.
"잘 봐라, 이게 바로 천국으로 가는 문이니까."
은호의 동공에는 달빛을 받아 영롱히 빛나는 자신의 칼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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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이 지고 태양이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려 하고있는 아침.
허름한 공사장에서 먼지와 피로 얼룩진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초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마치 무언가 충격적인 장면을 본 사람처럼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칼이 들려있었고, 그 칼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미친새끼...그딴 식으로 행동해버리면..정말 믿을 수밖에 없잖아.."
그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칼을 공사장 밖으로 멀리 던져버리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거참...더럽게 재수없는 시나리오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소름끼칠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시나리오였지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가 조용히 뇌까렸다.
"지연씨를 위해서라도 니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겠다, 임마."
그는 조용히 공사장 쪽으로 뒤돌아서서 힘없이 웃어보였다.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 그의 뇌리를 잡아당기는 듯 했지만
그는 녀석의 찝찝한 손길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무거운 걸음으로 터벅터벅 공사장을 나서는 남자의 어깨뒤로
어스름한 새벽 땅거미와 함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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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의 칼을 집어든 녀석은 칼을 자신의 머리 위로 힘껏 쳐들었다.
은호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한가지만 알아둬라."
은호가 흠칫했다.
"넌 아무래도 '킹'을 잡으러 온 모양인데 말야.."
"...?"
"미안하지만 난 '비숍'이야."
은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를 찾아가라."
은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라니?! 그가 도대체 누구.."
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칼을 쥐고있던 녀석은 들고있던 칼을 그대로 자신의 머리로 내리꽂았다.
녀석의 두개골은 사정없이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피는 녀석의 머리 위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은 고통에 찌든 듯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시작했지만
녀석의 입은 시종일관 귀에 걸릴듯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미친새끼..."
은호는 그 자리에 다리가 박힌 것처럼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녀석의 몸과 함께 녀석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드디어 나도 천국엘 가는구나..."
녀석의 목소리는 녀석의 목숨이 꺼져감과 동시에 사라졌다.
은호는 멍하니 녀석의 시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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